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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hers/기타 재미난 이야기들

어떻게 40만명이 덩케르크 해안에서 고립 되었을까


2차 대전 최대의 덩케르크 철수 작전이 발생한 이유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 왔습니다



http://reeltalk.in/dunkirk-movie-review/




2차 세계대전에 있었던 덩케르크 (뒹케르크) 철수를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 인데요, 완벽한 고증에 화려한 공중전 장면이 가미되어, 눈이 상당히 즐거운 영화였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시점, 시간 배치를 다르게 가져가서, 단조로울 수 있는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고, 옴니버스의 구성임에도 여러 주인공들의 심리가 잘 묘사 되어 있었지요.



http://www.dailymail.co.uk



사실 덩케르크 철수는 전사에서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이미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는데요



작전명은 오퍼레이션 다이나모로, 고립된 40여만명의 병력 중 약 34만명을, 900척의 선박을 동원해 유럽 대륙에서 영국으로 후퇴 시킨 작전입니다.

 


monetarysov.wordpress.com



숫자만 보면 그냥 그런가 보다 싶은데, 40만명이면 대한민국 국군의 약 65%에 해당하는 어머어마한 병력입니다. 이걸 단 9일 동안, 하루 최대 6 8천여명 실어 날랐습니다



'성공한 후퇴' 였다는 표현이 결코 과장되지 않습니다.

 


flagmagazin.hu


http://rarehistoricalphotos.com



덩케르크 철수 이후 유럽은 약 4년간 나치독일의 지배하에 있었는데요. 



영국을 주축으로 한 연합군이 병력을 잘 보존한 덕분에, 영국은 전쟁의 화마를 성공적으로 비껴갔고, 이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히 해 내게 됩니다



(본토 항공전이 있었지만, 다행히 독일이 영국에 상륙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1944년 있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 밴드 오브 브라더스 등의 영화에도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tbeartravels.com



그런데 여기서 조금 의문이 듭니다. 4만명도 작지 않은 숫자인데, 무려 40만명이나 포위 되다니요.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역사가 벌어진데는 다 이유가 있겠죠?



개전 당시 영국과 프랑스를 주축으로 한 연합군은 1차 대전의 참호전 교리를 중심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반면 독일군은 폴란드 침공에서 재미를 봤던 '전격전'으로 교리가 바꾸어 나가고 있었습니다. 



pinterest.de




전격전은 기갑차량을 중심으로 한 빠른 공격에 촛점을 둔 전략인데,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공세에 연합군이 혼비백산 할 수 밖에 없던 상황이었습니다.



기갑 중대의 공격을 당한 프랑스 사단이 패퇴하는 어이없는 사태까지 벌어졌습니다. -_-;;;



출처미상



연합군의 통일되지 못한 지휘체계에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연합국은 프랑스, 영국 그리고 벨기에의 3국이 주축이었는데, 말이 연합군이지, 제대로 된 연합 사령관이 없었습니다. 애초에 대규모 병력을 효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빛의 속도로 밀고 들어오는 독일군 앞에서, 분열이 가속화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전사를 읽어보면 프랑스군은 특히 항공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각개격파를 당했다고 서술되어 있어요.



결국 일렬로 진격한 독일의 기갑군이 연합군을 쌈싸먹게 되고, 그 결과 40만명의 대군이 조그만 해안가에 몰리게 되는 결과를 불러왔지요.




Deano's Travels - WordPress.com




흥미로운 건, 프랑스 침공당시 독일군도, 전격전에 대한 교리가 제대로 구축되어 있지 않아서, 야전 지휘관 간에 손발이 잘 맞지 않고 우왕좌왕 했다는 점입니다. 



부대간 진격 루트가 겹치면서, 기갑부대가 250km의 극심한 교통정체(!)를 겪어야 했고, 일부 기갑 집단의 경우 하위 부대의 위치를 알 수 없게 되는 상황까지 맞이 했다고 하는군요.



그럼에도 독일 육군은 루프트바페의 항공지원을 적절히 받을 수 있었고, 



'전선을 구축하겠지 설마 줄지어 달려들겠어' 라고 예상한 프랑스의 군 수뇌부의 의표를 찌르는 전략 덕분에, 프랑스의 주공을 거의 와해시키다 시피 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는 프랑스 군 지휘부가 독일의 병력을 실제보다 약 3배 높게 평가했다는 오판도 있었다고 알려져 있지요. 



RT.com




역사에는 만약이란게 없으니 무의미한 상상일지도 모르겠지만,



만약 프랑스군의 잘못된 판단만 없었다면, 



독일 못지 않은 병력을 보유한 상황에서, 적절한 타이밍을 찾아 반격을 할 수 있었을 거고, 2차 세계 대전이 아닌 독프 전쟁으로 마무리 되었을 거란 주장도 있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 하나는, 40만명의 병력이 덩케르크에 고립되게 이유가, 한 가지가 아닌 복합적인 여러 상황이 엮이면서 발생 했다는 사실일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