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공학/비행기2018.05.23 00:05


닐 암스토롱이 있기 전까지의 아폴로 프로그램의 아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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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연이어 우주 관련 포스팅이네요. ^^;;;


인간을 최초로 달에 보낸 아폴로 프로그램.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이 벌였던 문레이스의 산물로,


가장 유명한 아폴로 11호의 닐 암스트롱이 달에서 보낸 첫 번째 문구는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기억될 정도 입니다.



"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


이것은 한 명의 인간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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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이후로도 나사는 꾸준히 아폴로 프로그램을 진행해서,


1969년 말 부터 1972년 말까지 3년간 무려 7 차례나 


달궤도에 인간을 보내는 괴력을 발휘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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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미션이 순조롭진 않아서, 


12호의 경우 발사 도중 벼락을 맞으면서 사령선이 셧다운 되는 문제도 있었고, 


그 유명한 13호의 경우 대원들이 목숨을 잃을 뻔 했던 폭발사고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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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폴로 11호 부터 17호 까지, 대부분의 미션이 성공하면서,


총 21명의 우주인이 달 궤도를 다녀왔고, 이 중 12명의 우주인이 달에 발을 디딜 수 있었지요.



잠시만요. 11호 부터 17호까지 달에 갔다고 하면, 


11호 이전에 일종의 예행 연습인 미션들이 있었던 모양이네요.



4호, 5호 6호는 새턴 V로켓을 시험하기 위한 무인 발사체 미션이었고,


아폴로 7호에 이르러야 유인 발사 시험이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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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7호에서는 새턴 V의 축소형인 새턴 1B가 사용되고 


(장비를 굳이 달궤도에서 시험할 필요가 없어 지구궤도용 소형 발사체가 사용됩니다.)


8호에 이르러야 처음으로 지구 최강의 로켓이었던 '새턴 V'가 쓰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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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11호를 달에 보내기 전에 3차례, 크게 보면 네 차례의 사전 예행 연습이 있었던 셈입니다.


발사체의 점검, 사령선의 점검, 착륙선의 점검, 달궤도 진입 절차의 점검 등등,


단 네 차례의 시험 발사를 성공시킨 덕분에, 닐 암스트롱이 달에 땅을 딛을 수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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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단연 백미는 아폴로 8호 미션이 꼽히는데요.


이제 막 사람을 지구 궤도에 올리는데 성공한 상태에서, 


아직 유인비행이 검증되지 않은 새턴 V에 대원을 태우고, 


달 궤도로 보내는 시도가 이뤄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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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달착륙선 개발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라


처음 사람을 태워보는 발사체에, 


완성되지도 않은 장비를 탑재하고, 


생전 처음으로 달궤도에 사람을 보냈다가, 


아무일 없이 지구로 무사히 귀환 시키는, 


1타 4피의 미션으로 지금으로는 상상도 하기 힘든 도박에 가까운 미션 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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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에게 뒤쳐졌다는 미국의 절박함 그리고


프로젝트 리더였던 폰브라운의 리더쉽, 쇼맨쉽, 천재성이 없었으면 


아폴로 8호, 아니 아폴로 미션 자체가 성공하기 힘들 었을 거라는 평가도 있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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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불가능해 보였던 8호 미션을 성공하면서,


아폴로 1호가 시작된 1967년 부터 불과 2년 만인 1969년에 12월에


결국 아폴로 11호를 무사히 달에 착륙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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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로호도 세 번의 발사만에 성공했던 걸 기억 하신다면,


그 어렵다는 우주 개발에서, 


한 번의 실패없이 네 번의 시험 발사 만으로 성과를 일궈낸게 얼마나


놀라운지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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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10호가 거의 모든 준비가 마무리 된 사전 리허설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8,9호의 단 두 차례의 시험 비행만으로 대부분의 장비 테스트를 마친 셈이니,


이건 뭐.... 거의 기적이라고 밖에 표현하기 힘들어 보이는군요.








하지만 이것도 이전 미션이었던 아폴로 1호, 


그리고 1호 덕분에 존재하지 못했던 2호와 3호 미션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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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아폴로 1호 미션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AS-204라는 시험 미션이 존재했을 뿐이었지요.


아폴로 1B를 이용, 사령선과 기계선을 검증 하는 사전 미션이자 첫 유인 미션이었고,


정식 아폴로 미션의 네이밍을 얻지 못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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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AS-204 지상 시험 도중 사고가 일어납니다. 


우주선 내부에 스파크가 튀면서 불이 붙었는데 (Plug out test)


사령선 내부에 공급되어 있던 순산소 덕분에 불길은 거침없이 번졌고,


잘못 설계된 사령선 해치 덕분에 빠르게 탈출하지 못하면서,


결국 시험 비행사 세 명이 모두 숨지는 비극적인 사고가 발생했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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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을 위해 기밀이 강화된 해치는 여는데 무려 90초가 걸릴 정도로 복잡했다고 하는군요.


케네디 대통령이 60년대 안에 사람을 달에 보내겠다고 선언한 탓에 


NASA 개발 일정이 너무나 촉박했고, 


덕분에 설계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검증되지 않은 채 


그냥 건너 뛰어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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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명의 소중한 목숨을 희생하면서 얻은 교훈으로


나사는 추가 1년의 기간을 들여 사령선 모듈 재설계에 착수하고, 


동시에 이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유가족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AS-204를 아폴로 1호 미션으로 정식 승격시키기에 이릅니다.




다만 이 경우 이전 테스트 미션인 AS-201, AS-202를 같이 승격시켜야 하는 문제가 생기고,


AS-204가 1호가 아닌 3호가 되는, 순서가 꼬이게 되는 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아얘 2호와 3호 자리를 비워두고 바로 4호로 건너뛰는 결정이 내려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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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새턴 V의 무인 발사 미션이었던 AS-501, 502, 503이 


각각 4호, 5호, 6호 미션으로 승격되면서


지금의 아폴로 미션 넘버링으로 완성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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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1호 이전에 어떤 테스트 미션이 있었을까 궁금해서 뒤져 봤던게,


왜 아폴로 2,3호가 존재하지 못했는지, 


아폴로 프로젝트의 흑역사(?)까지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글쎄요. 미국이 물 불, 앞 뒤 가리지 않고 돌진했다는 느낌이 드는 건 


아마 냉전 시대 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지금이라면 쉽게 생각하기 어려운, 호기로운 시절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Posted by 위저드아이언 wizard_I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