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불황이 불러온 우주 대화합의 현장




냉전이 한창이던 1970년대,



문레이스를 필두로 한 미소간 우주개발 경쟁은 미국의 판정승으로 끝나고, 



미국은 태양계 탐사를, 러시아는 우주 정거장 개발에 나서면서, 양국은 각자 다른 분야에서 범접할 수 없는 기술을 축적해 나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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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경우 우주 정거장 살류트를 최장 3천일 이상 운용 하면서, 본격적인 유인 우주 탐사 시대를 열어가는데요.



우주 비행사를 실어 나르고, 보급품을 수송하다 보니, 



자연스레 살류트의 '확대 개량형'에 대한 가능성을 확인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쏘아올린 살류트가 총 7개에다가,


우리가 허구한날 하는게 우주 정거장 도킹인데,


얘들을 동시에 궤도에 올려서 서로 갖다 붙이면, 좀 더 크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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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부터 1990년까지 거의 1년간, 한 기 씩 총 4기의 모듈을 350km 상공의 지구 저궤도에 올려놓고,



이들을 서로 도킹시켜 결합합니다.



최초의 복합 구조물의 우주 정거장 '미르'의 탄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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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처음 발사된 미르의 코어모듈은 원래 샬루트 8호로 계획 되었던 'DOS-7' 모듈로,



두 개의 소유즈 도킹 해치 외에, 네 개의 확장 도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초기 미르는 살류트의 운용과 크게 다른 점이 없어서, 



프로톤 K에 의해 무인으로 발사된 거주 모듈에 소유즈 TM이 우주비행사를 실어 나르는 방식에는 크게 변함이 없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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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년뒤인 1987년 3월 30일, 



우주 탐사용 X선 망원경의 각종 과학 장비 및 자세 제어 자이로가 달린 '크반트 1' 모듈이 발사되면서 슬슬 대형 우주 정거장의 위용이 드러납니다.



코어모듈 20톤에 반트1의 20톤이 합쳐지면서, 단박에 40톤의 복합 구조물로 증축(?)이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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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간단한 설명과 달리 두 모듈의 도킹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아서,



크반트 1이 발사된 뒤 6일차인 4월 5일에나 랑데뷰가 실시되고, 두 번의 시도 끝에 도킹에 성공하게 됩니다.



제어 컴퓨터에 이상이 생겨 EVA를 통한 작업이 실시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우주 쓰레기가 두 선체 사이에 끼어 있던게 문제 였었다고 하지요.



(궤도 조정 기간은 현재 ISS와 소유즈 사이에서도 최대 7일 안팎이 걸린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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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매 1년 마다 '크반트 2', '크리스탈 모듈'이 발사되어 성공적으로 도킹되고,



소련은 1990년, 4개의 모듈로 구성된 총 80여톤의 미르 초기 구조물을 완성하게 됩니다.



미르는 소련 우주개발의 상징과 같은 존재였고, 각종 과학실험 외에, 친소 공산권국가들의 체제 선전에도 활발하게 활용되어,



1987년에는 시리아에서 첫 우주 비행사가, 



1988년에는 불가리아와 아프카니스탄(!)에서 첫 우주 비행사가 탄생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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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이렇게 우주 정거장쪽에서 기념비적인 기록들을 세우고 있었는데,



그것도 냉전시대에, 같은기간 미국에서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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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미국도 단독으로 우주 정거장을 운용한 적이 있었습니다.



소련의 살류트가 첫 우주 정거장의 타이틀을 가져가기가 무섭게 불과 2년 뒤인 1973년



단일 구조물로는 세계 최고의 우주 정거장인 '스카이랩'을 쏘아 올렸거든요.



스카이랩은 1963년 부터 계획 되었던 프로그램 이었습니다만, 문레이스에 밀려 진전되지 못하고 '페이퍼 플랜'으로만 남은 상태 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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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1호가 달착륙에 성공하기도 전인 1962년,



아폴로 프로그램이 장차 예산 문제로 지속되기 어려울 것을 꿰뚫어 본 폰 브라운은, 1963년 부터 '아폴로 X'라는 초기 우주정거장 프로그램을 계획 했는데,



1972년 17호를 마지막으로 아폴로 프로그램이 종료되자, 바로 팀을 스카이랩 프로그램으로 전환 시키면서,



아폴로 종료 직후인 1973년에 스카이랩을 발사하기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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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프로그램의 새턴 V 발사체를 활용한 탓에, '77톤'이라는 크고 알흠다은 덩치를 가질 수 있었는데요.



이는 당시 러시아가 운용했던 샬류트의 '19톤'을 가볍게 압살하는 규모의 우주 정거장이었습니다.



샬류트가 세웠던 기록을 일시에 갈아엎으면서, 소련이 미국을 따라올 수 없음을 전 세계에 과시하기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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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미국 역시 운용이 순조로웠던 아니었습니다.



첫 발사에서 운석과의 충돌로 차폐막(micrometeorite shield)과 태양전지판이 손상 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태양빛을 가려야할 물체가 사라지면서 내부의 온도가 급격하게 올라갔고, 정거장 내부의 장비들에 문제가 생기는 위기가 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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넝마같은 망토(?)를 입고 있는 스카이랩의 사진에 의아하셨던 분들이 있으실텐데,



온도상승을 방지하고자 고육지책으로 선체를 일종의 파라솔(?)로 덮다 보니 나온 장면입니다.



10일만에 계획, 제작된 이 임기응변으로, 최초 입안자였던 Jack Kinzler는 나사 공로 훈장을 수여받고



미스터 픽스 잇 (Mr. Fix it)이라는 칭호 라고 하고 '갈려진 공돌이' 라고 쓴다 를 얻었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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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튼 스카이랩 첫 미션인 긴급 수리임무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면서, 



첫 미션을 포함, 총 세 번의 미션에서9명의 우주 비행사가 171일 동안 다양한 무중력 실험을 실시하게 됩니다.



총 80개의 카테고리에 300개의 세부 실험 항목이 존재 했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우주 천문학', '물리학' 이외에도, 당장 응용이 가능한 무중력 하에서의 '금속공학', '지질학' 등의 시험이 진행 되었고,



무중력 환경 하에서 승무원들이 받는 정신적, 육체적 변화를 연구하는 '우주 생리학'이 장족의 발전을 거두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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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빡센 일정 때문에, 스카이랩 4호에서는 비행사들이 1월 28일 하루의 일정 전체를 보이콧 하는 최초의 '우주파업'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하지요.



지금의 ISS 우주비행사가 하지 못하는 '우주샤워'가 스카이랩에서는 가능했는데, 



러시아를 꺾기 위한 미국의 패기가 느껴지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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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공교롭게도 스카이랩이 발사된 1973년은 전세계적인 이벤트가 일어난 해였습니다.



바로 제 4차 중동전쟁이 일어난 해였는데요. 



이집트가 이스라엘을 선제공격하면서 일어난 전쟁이, 미소의 대리전으로 확대되면서 중동의 상황이 악화되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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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만의 산유국들이 이에 반발 하면서 원유의 가격인상, 감산에 돌입하고1974년에 세계를 휘청이게 한 1차 석유파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배럴당 1.9 달러였던 원유가격이 10배 가까이 뛰어오르면서 11.6 달러를 돌파 했는데,



자동차에 넣는 기름값이 갑자기 열배로 뛰어 올랐다고 생각해보세요. 그야말로 충공깽이 아닐 수 없습니다.



www.npr.org



소련이야 공산주의로 계획경제로 사회를 통제하고 있어서 우주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지만, 미국은 아니었습니다. 



지독한 스테그플레이션에 빠져들면서, 60년대 말과 같이 우주개발에 국력을 올인할 수 없게 되었고, 



이어진 2차 석유파동의 경제상황은 NASA에 '예산삭감'이라는 결정타를 날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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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만 km 떨어진 달에 보내기 위해 만들어진 발사체를, 고작 상공 400km의 지구 저궤도용으로 사용 하다니요. 경제성에서 결코 말이 안되지요. 



스카이랩 5호이 취소되면서, 스카이랩 프로그램 자체가 종결되어 버리고,



결국 1974년부터 6년간 스카이랩은 사람이 탑승하지 않은 무인 상태로 지구 저궤도를 떠돌게 됩니다.



러시아가 신나게 살류트를 쏘아 올리고 있을 때, 총 2,249일 중 단 171일만 유인상태로 있었던 스카이랩은



1979년 홀로 쓸쓸히 호주 대륙 남서부의 대륙에 재가 되어 추락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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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게 올린 우주 정거장을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고스란히 날려 먹는 사건에, 나사 내부에서도 반발이 상당 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나사가 완전히 손을 놓은게 아니어서, 경제성(?)의 '우주 왕복선'을 개발하기로 한 것도, 바로 스카이랩을 운용하기 위한 목적 이었습니다.



뭐 아시는대로 우주 왕복선의 첫 발사는 1981년에 있었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일정 이었지만요. 



(델타윙이 장착된 비행기 방식의 우주선이었던 지라, 개발에 너무 많은 난관이 있던 탓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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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휘청 하는데 소련이라고 문제가 없었을까요. 



천조국은 스카이랩을 날려먹었지만,



불곰국은 나라를 전체를 날려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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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2월 26일 소비에트 연맹, 소련이 공식적으로 해체됩니다. 냉전의 종식을 알리는 역사적이 일이 벌어졌지요.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경제체제가 바뀌면서, 러시아의 경제는 일대 대 혼란, 파탄이 시대가 막을 올리고,



1998년에는 국가부도 사태, 모라토리움이 선언되기까지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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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박살났는데, 우주개발은 언감생심이지요. 



우주 왕복선을 따라 했었던 부란 프로그램은 진작에 엎어졌고, 미르 우주정거장의 미래 역시 심각하게 고민하게 해야 했습니다.

 


유지 비용 자체도 문제였습니다만, 미르 모듈의 관리도 문제였습니다. 



크반트1, 크반트2가 우크라이나의 '하르트론' 설계국에서 제작 되었거든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한 나라가 아니게 되었으니, 미르의 미래는 상당히 불투명한 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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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여기서 미국이 러시아에게 손을 내밉니다.




나사는 스페이스 랩의 후속 프로그램인 '프리덤' 우주 정거장을 계획 중이었는데, 예산 삭감으로 전면 백지화 되자 미르쪽으로 눈을 돌려 공동 운영을 모색했던 것이지요.



적은 비용으로 우주정거장 분야의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판단이었고,



결국 1992년 '조지 부시'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대통령 사이에 '평화적 목적을 위한 우주 공간 탐사와 사용 협정'이 발표 되면서,



1993년 ISS를 목표로 한 '셔틀-미르 프로그램'이 시작 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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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개의 모듈로 이루어진 미르에 전원모듈을 추가해서 확장하고, 1기의 과학 모듈 외에 스페이스셔틀의 도킹 모듈을 더해,



총 7개의 모듈로 구성된 ,우리가 아는 거대 우주정거장 미르로 확대 발전 되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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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4년간 9번의 우주 왕복선이 미르에 도킹하는 미션이 있었고, 



미르의 승무원을 실어나르거나 보급품을 전하는데, 스페이스셔틀이 활약하게 됩니다.



우주왕복선의 승무원들에게 러시아어가 필수(?) 제2 외국어가 된 시기가 바로 이 즈음 이라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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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는 1986년 부터 2001년 까지 약 16년간,



우주에서 가장 오래 머물렀던 가장 큰 인공 구조물로 자리하게 됩니다만,



여러 번의 크고 작은 사고도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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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는 산소발생기에서 화재가 발생해서, 약 90초간 선내가 불길에 휩싸이는 사고가 있었고,



(승무원 주장으로는 14분이었다는 소리도 있습니다.) 



이 여파로 실내가 약 45분간 자욱한 연기로 뒤덮이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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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에는 수동 도킹 중 승무원의 실수로,



프로그레스 M-33, M-34가 전력을 담당하는 스팩트르 모듈에 충돌하는 사고도 일어나서



미르 전체의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기는 일도 있었습니다.



사고 후 복구에도 70%의 공급 능력 만이 회복 되어, 미르 운용에 큰 차질을 불러오기도 했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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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의 건설 시작, 시스템의 노후화, 유지비용의 상승등의 이유로 



미르는 결국 페기 결정이 내려지고2001년 3월 23일 남태평양의 피지 인근에 추락하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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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소련 우주개발의 상징이자 냉전종식, 우주평화의 상징이었던 미르. 



미르가 없었다면 ISS의 건설이 상당히 뒤로 미루어 졌지 않을까 싶기도 하군요.



이런저런 의미에서 우주정거장 역사에서 중요한 획을 그었음에는 분명 하니까요.











Posted by 위저드아이언 wizard_IR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