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절 되었지만 기술로 살아남은 이스라엘의 독자개발 전투기
지난 편에서 이스라엘이 마개조했던 다양한 지상병기에 대해 살펴 봤었죠.
이스라엘이 인구 800만명 안팎의 중동의 소국이면서
잦은 전쟁으로 병기의 소모율이 높은 탓에 일어난 마개조였는데요.
IAI 센츄리온 전차 / en.wikipedia.org
한 번 손에 들어온 자원을 극강의 개조를 통해 활용하는 방식이,
지상분야에서는 손쉬운 편이었지만 항공분야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전투기라는게 도입 자체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뭐낙 첨단 기술이 사용되다 보니 개조가 쉽지 않은 탓인데요.
그래서 이스라엘이 손댄 전투기의 흐름을 보면
(불법) 면허생산, 자체개량, 신규개발의 전형적인 3단 콤보의 길을 걷게 됩니다.
IAI 미라주 III / en.wikipedia.org
처음에는 프랑스의 미라주 III를 사용했다가
6일 전쟁후 미라주 V의 도입이 무산되면서 미라주 V를 무단복제한 내셔(대거)를 만들어내고,
내셔의 엔진을 스테크마에서 팬텀의 J79로 개조하면서
미라주 시리즈의 끝판왕인 크피르를 개발한 뒤,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자체 신규개발 전투기인 라비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게 되거든요.
IAI 내셔 / en.wikipedia.org
아마 관심있는 분들은 아실거에요.
첫 개발(?) 전투기인 내셔가 만들어진 과정은 정말 드라마틱 했습니다.
프랑스제 전투기를 주력으로 사용하던 이스라엘이
6일 전쟁에서 있었던 미라주 III의 소모분을 보충하기 위해
대지공격 전용인 미라주 V를 도입하는데요.
프랑스로 대금지급을 완료한 상태에서 기체를 인도받지 못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아랍연맹에서 프랑스에 압력을 넣어 이스라엘에 전투기를 넘기지 못하게 막은 거지요.
중고물건을 택배거래 했는데, 입금 하자마자 판매자가 잠수탄 상황 정도 되려나요.
하지만 가만이 있을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돈도 줬는데, 물건을 못받는 안습인 상황이 되자,
그 유명한 자국의 첩보조직인 모사드를 동원해서 미라주 V의 도면을 훔쳐내는데 성공하고,
결국 입수한 도면을 바탕으로 내셔라는 이름의 미라주V를 완성시키게 됩니다.
모사드 / eliasbejjaninews.com
스위스에서 스테크마 엔진 개발자를 포섭해 전투기 도면을 얻어내는 과정은
밀리터리 매니아들 사이에서 꽤나 유명한 일화라고 하는군요.
겉으로 드러난 내용만 보면 돈 떼먹은 프랑스에,
도면을 강탈해 전투기를 만든 이스라엘의 흥미진진한 이야기 꺼리이지만,
최근 재조명되는 여러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면,
어쩔 수 없이 기체를 넘기지 못한 프랑스가
다쏘사를 통해 알음알음 자체 생산을 지원한 정황이 있다고 하는데요.
양국이 중동의 눈을 피한 편법 라이센스 생산에 가깝다는 평가도 있고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가 엔진 설계도가 통째로 넘어갈 줄은 예상하지 못했겠지만요. ㅋ
6일전쟁에서의 내셔 / en.wikipedia.org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여튼 총 61대가 생산된 내셔는 무려 100여기의 적기를 격추시키는 놀라운 활약을 하고,
내셔를 만들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스라엘은
내셔의 심장을 더 튼튼한 팬톰의 J79로 바꾸는 마개조에 착수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물론이요 에콰도르, 콜롬비아, 스리랑카 그리고 전투기의 본고장인 미국까지
총 5개 국에서 사용되었던 '크피르' 전투기가 탄생하게 되지요.
아.... 까먹었는데 네셔도 대거라는 이름으로 아르헨티나에 팔렸었네요.
포클랜드 전에 참전했다가 영국에 처참하게 발렸는데,
같은 기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정 반대의 전과가 나오는
대표적인 케이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미해군 F-21A 크피르 / en.wikipedia.org
눈썰미가 있는 분들이라면 내셔와 크피르의 차이점을 단박에 찾아내기도 하는데요.
동체의 길이가 짧아지고 대신에 카다드가 장착된 외형이 크피르의 특징입니다.
다소 뚱뚱하고 짧은 J79을 동체에 구겨넣다 보니 갖게된 독자적인 형상이지요.
콜롬비아 F-21A 크피르 / en.wikipedia.org
당시로는 고성능의 엔진이 탑재되면서
1만 3천파운드의 추력이 단박에 1만 8천파운드로 뛰어오르게 되고,
무거워진 기체 중량 130kg 과 늘어난 적재 중량3톤을 등가교환 시켰으니,
마개조라는 표현이 부족하진 않습니다......만,
en.wikipedia.org
사실 전투기의 엔진을 변경했으니, 마개조 보다는 신규개발이라고 표현하는게 맞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수리온 헬리콥터가 유로콥터의 AS532 쿠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UH-60 블랙호크의 T700 엔진을 사용하면서
처음부터 거의 신규 개발 했던 걸 떠올리시면 비슷할 테니까요.
완성도 높은 미라주의 끝판왕 크피르.
그런데 크피르가 개발된 시기는
이스라엘의 정세가 안정되기 시작한 197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IAI F-21A 크피르 / en.wikipedia.org
1973년 4차 중동전쟁을 마지막으로
더이상 이스라엘과 아랍연맹간의 대규모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고
오히려 1980년 9월부터 8년간 이란과 이라크간의 전쟁이 일어나면서
아랍내 수니파와 시아파간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붉어집니다.
만일을 대비한 마개조 전투기를 만들었으나 정작 써먹을 데는 없었고
자기네들끼리 싸우기 바뻐서 이스라엘에게 신경쓰기 힘든 환경이 되어버렸습니다.
http://idf-airforce.blogspot.com
크피르는 무려 220대나 생산 되었지만, 딱히 쓸 데가 없어졌습니다.
게다가 그 사이 미국이 이스라엘에
뛰어난 지상공격기 A-4 스카이호크, 당대 최강의 F-4 팬텀을 공급하면서
크피르의 입지가 상당히 애매해졌습니다.
크피르로는 이스라엘을 지킬 수 없다! 후속기 개발에 착수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이스라엘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자체 개발 전투기인 라비의 개발에 착수합니다.
IAI 라비 / en.wikipedia.org
크피르와 마찬가지로 라비 역시 이런저런 이야기가 많은 전투기입니다.
이스라엘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전투기임에는 분명하지만,
미국 군산 복합 업체들이 개발에 참가하면서 미국이 약 40%의 투자를 하고 있었거든요.
엔진 등 상당수 핵심기술은 미국의 도움을 받아 개발되었으니,
라비가 F-16 유사한 형상이 나온 것도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의 F/A-50, 일본의 F-2, 대만의 경국호가 F-16과 비슷한 모양을 갖게 된 것 처럼요.
관련 포스팅 >> F-16을 베이스로 개발된 아시아의 세 전투기
IAI 라비 / en.wikipedia.org
크피르의 해외판매가 성공한 걸 봤을 때
잠재적인 경쟁자를 대체 왜 미국이 나서서 지원해 줬는지 이해가 잘 가진 않습니다만,
라비가 자신의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결국 미국은 라비 전투기 개발에서 손을 떼게 됩니다.
자금줄과 개발줄이 말라버린 이스라엘은
결국 3기의 시제기를 완성한 상태에서 라비의 개발을 중단하게 되지요.
IAI 라비 / en.wikipedia.org
시제기라고는 하지만 실제 날 수 있는 고성능 전투기를 만든 사실 자체에는 변함이 없어서,
2만 파운드 추력의 프랫앤 휘트니의 PW1120를 달고도 델타윙의 적용하면서
으로 단발의 소형기체에 7톤의 무장탑재량을 달성할 수 있었고,
기동성을 위해 당시로는 첨단 기술인 디지털 플라이바이 와이어가 도입되면서
이스라엘 항공산업 기술을 진일보시킨 기체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www.f-16.net
라비의 개발에서 획득한 기술로
F-4 팬텀을 독자개량한 쿠르나스(Kurnass) 2000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F-16의 항공장비 상당수를 국산화한 F-16I Sufa를 만들기도 했으니
라비의 개발이 결코 헛되지는 않아 보이는군요.
againstallodds.wikia.com
흠....인구 8백 만명의 소국이 완성도 높은 전투기를 직접 개발했다니요.
F/A-50 골든이글과 비슷한 일이
이미 30년 전인 1970년대에 이스라엘에서 있었다는게 정말 새삼스럽기만 한데요.
뜬금없지만 KFX 한국형 전투기의 개발이
라비와 달리 세상의 빛을 봤으면 하는 바램도 들고 그렇습니다. ^^;;;
이전 포스팅 >> 마개조의 군사강국 이스라엘이 보유한 특별한 지상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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