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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공학/비행기

2차 대전중 미국이 전략 물자로 관리했던 노든 폭격 조준기


너무 획기적이어서 보안이 철저했던 폭격 지시기




아시는대로 예나 지금이나 항공세력의 중핵은 공격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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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목적은 적진을 파괴하여 적의 항복을 받아내는 것이기 때문에, 공격기는 공군에게 전투기 못지 않은 중요한 대접을 받고 있거든요.



응? 우리나라도 F-16나 F-15같은 전투기만 있던데, 무슨 공격기가 딱히 필요한가요?



눈부신 기술발전 덕택에 여러 임무를 소화하는 '멀티롤 전투기'가 등장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로,



사실 멀지 않은 베트남전 때만 해도, 지상공격 전용으로 A-4 스카이레이더 A-6 인트루더 같은 별도의 기체가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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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2차 대전 때만 해도, B-24 리버레이터나 B-17 플라잉 포트리스같은 중폭격기가 대량 운용되면서, 지상공격의 핵심전력으로 대접 받았습니다.



전투기는 이들을 호위하기 위한 역할을 담당했을 뿐이지요. (유럽전선의 이야기로, 태평양전선은 함재기 위주의 해전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들 중대형 폭격기의 문제 중 하나가 바로 폭격 정밀성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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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초에 등장한 단발 급강하 폭격기는 목표지점으로 다이빙하는 방식으로 목표를 정확하게 파괴했지만,



급강하의 경우 적에게 자신을 노출하는 위험이 월등히 높았고, 폭장량도 많지 않아 유의미한 전과를 올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등장한게 큰 폭장량, 긴 이동거리의 4발 중폭격기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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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손실률은 자처하더라도, 대량의 폭탄을 마구 떨어뜨려 하나만 맞아라 전략을 쓰다 보니, 폭격의 정확도가 너무 떨어졌는데요.



이를 위해 개발된게 바로 Bomb sight라 불리는 폭격지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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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유명한건 아무래도 미육군 항공대에 운용되었던 노든 조준기 (Norden bomb sight) 였겠지요.



자유낙하 폭격에서 가장 중요한건, 폭탄의 무게와 항공기의 고도와 속도, 그리고 해당 지역의 풍향인데요.



노든 조준기의 경우 기계식 컴퓨터와 고정밀 자이로가 조합된 탓에 몇가지 정보의 입력만으로도



4천 피트 상공에서 CEP(원형공산오차) 11미터라는 무지막지한 성능을 발휘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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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부의 스테빌라이저 덕분에, 폭격기가 어떤 기동을 하던 안정적으로 목표를 조준할 수 있었으며,



적당한 타이밍이 되면 알아서 자동으로 폭탄을 투하해주는 '자동폭격기능'이 덕분에,



폭격수는 조준기 시야에 목표물이 들어오면, 두 개의 휠을 사용하여 십자선에 목표를 조준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아날로그 컴퓨터의 출중한 성능으로 인해 조작에는 6초, 계산에는 아무리 오래 걸려도 50초면 충분했다고 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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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등장한 이후에도 개량을 거듭하면서, 자동 폭격기능에 간이 오토파일럿 기능이 합쳐지면서,



파일럿이 기체의 수평을 맞춰주기만 하면, 노든 조준기와 연동된 '스페리 A-3' 시스템이 비행기의 속도, 이동 방향을 알아서 제어해 주었습니다.



목표지역에 진입후, 표적만 입력하면, 비행과 폭격을 알아서 수행하는 만능 폭격 지시기였던 셈입니다.



이런 놀라운 물건이 어느날 똭 하고 등장하진 않았겠죠.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 듯, 노든 조준기는 네덜란드 출신의 미국인 엔지니어 칼 노든에 의해 개발되었는데요.



스위스에서 공학은 전공한 뒤, 1910년 미국의 '스페리 자이로스코프'사에 입사하면서 본격적으로 조준기를 개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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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대전 당시 사용되었던 Course Setting Bomb Sight (CSBS)가 있었지만, 



수치에 맞게 수동 계산을 해야 하는, 일종의 폭격 지시기에 가까웠던지라 (주판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네요.) 그렇게 널리 사용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노든 조준기 아이디어는 폭격 목표의 입력 후 파일럿에게 폭격기의 이동 방향을 지시해 주는 PDI ( pilot direction indicator)의 개발과 함께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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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프로토 타입은 1924년 Mark XI라는 이름으로 등장했는데, 자동으로 비행기의 비행을 지시해주다니요.



높은 목표에 비해, 기계는 복잡하기만 하고, 시원찮은 성능을 보여주며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했었지요.



그러다 1차 세계대전 종전 후인 1929년, 폭격의 정밀성을 높일 궁리를 하던 미육군이 우연히 



응? 이거 성공만 하면 대박인데? 잘 개량하면 우리가 써 드릴께



라며 노든의 Mark XI의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스태빌라이저용 자이로스코프 SBAE (Stabilized Bombing Approach Equipment)와 PDI를 넘어서는 오토파일럿 (Automatic PDI)가 달리면서 Mark XV로 최종 완성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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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이지만 컴퓨터이고, 스스로 수평을 유지하면서, 오토파일럿 기능까지... 지금 봐도 놀라운 수준의 장비인지라, 노든 폭격기의 기밀 유지를 위해 미육군은 개발만큼의 공을 들였는데요.



조준기를 사용하는 모든 병사들에게 기밀유지 서약을 받고, 문제가 생겼을 경우 쉽게 파괴가 가능하도록 발화 장치가 들어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작은 가방에 담아 별도로 보관하다가, 출격이 되어서야 기체에 장착할 정도로 철저히 보안을 유지했지요.



이런 노력 때문인지 몰라도 노든 조준기는 2차대전 이후의 한국전쟁에서 맹 활약하고, 



현대에 들어서도 미사일이 날라다니던 베트남전에까지 사용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VO-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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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단점이 없진 않아서, 예를 들어 내장된 자이로가 3만 RPM의 회전이 필요한 탓에 부품의 가격이 무척 높았다고 알려지고,



70년전 가격으로 개당 1만 4천 달러(한화 1천 6백만원) 에 육박했다고 하는군요.



1945년 B-17의 대당 생산가가 24만 달러(2억 8천만원) 였던 걸 감안하면, 노든 조준기가 얼마나 고가의 물품인지 쉽게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굳이 자이로가 아니더라도 내장된 아날로그 컴퓨터가 워낙 정밀 장비이다 보니, 의외로 쉽게 고장이 났고,



막상 폭격지점에 도착하면 쓰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고 합니다.



전장이라는게 이상적인 환경이 아니다 보니, 노든 조준기를 사용한 실제 폭격 성공률은 약 30% 안팎이었다는 분석도 있고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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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슬 글을 마무리 지어야 겠어요. ㅋ 



Mark XV를 개발한 노든은  흥미롭게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개발당시 본인은 정밀한 폭격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신념 때문에 하루에 16시간을 개발에 매달릴 정도로 열성이었다고 하는데요.



실제 미 중폭격기들이 유럽전선의 조기종식을 이끄는 전과들도 내긴 했으니, 노든의 의도가 절반 정도는 성공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쟁을 위한 병기라는 점에서는 딱 절반 정도지만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