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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공학/비행기

고속헬기 덕후 시콜스키의 독특한 도전

헬기의 고속화를 향한 의지를 불태우다




헬리콥터는 수직으로 이착륙하는 대표적인 항공기이죠. 



일반 항공기로는 할 수 없는 비행을 하다 보니까, 개발 과정에서 이런저런 시도가 많이 있어 왔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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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누크와 같은 텐덤로터 방식, 두 로터가 엇갈려 있는 인터메쉬 방식, 그 유명한 동축반전 방식, 세상에서 가장 빠른 틸트로터 방식 등등, 



조금만 살펴봐도 특이한 방식의 수직 이착륙기가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 얻는게 있으면 잃는것도 있는 법.



좁은 공간에 뜨고 내릴 수 있는 장점을 얻었지만, 저속에 불안정성이라는 단점도 같이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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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체의 양력이 온전히 메인로터에서 나오다 보니, 로터에 조금만 이상이 생겨도 그냥 뚝 떨어지는 문제가 발생하거든요. 



오토로테이션이라고, 로터가 바로 멈추지 않고 어느정도 양력을 만들어 바로 추락으로 이어지진 않습니다만, 



이번 마린온 추락사고만 봐도 헬기가 얼마나 불안정한 기체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태생적으로 로터가 달린 형상 때문에, 결코 고속을 낼 수 없는데요. 



어느 정도의 속도가 넘으면, 프로펠러가 저항 (양력<항력)으로 작용하게 되고, 그래서 일반적인 헬리콥터는 아직 400km/h를 넘지 못 한 수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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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헬기만한 물건이 있기는 하당가? 


우리는 갈때까지 가 볼거야 고속헬기 도전!



을 외치며 에어버스와 같은 일부 기업에서는 헬기의 고속화 연구를 꾸준히 진행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단연 눈에 띄는 기업은 바로 '시콜스키'사 입니다. 



무려 50년간 국책 프로젝트와 자체 프로젝트를 넘나들며 고속헬기를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거든요. (2015년 록히드 마틴에 합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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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콜스키사 하면 서방 최대의 헬리콥터 CH-53E 슈퍼스탤리온을 생산하는 곳으로 유명하지요. 



이것도 모자란지 2018년 부터 성능을 한층 개량한 CH-53K 킹스탤리온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는데요.



헬기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워낙 유명한 기업이다 보니,



개발 중에 묻힌 프로토타입이 상당히 많고, 이중에는 무려 시속 500km를 갱신한 고속 헬리콥터도 있었습니다. 



oldmachinepress.com




1970년 시콜스키가 빠른 속도를 위해 아얘 작정하고 만든 S-67. 



이 녀석은 이론상 시속 370km까지 날 수 있었지만, 엔진 성능등의 이런저런 이유로 311km/h를 낼 수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연상하는 대형 주익이 인상적이지요.



하지만 이미 1967년 록히드사에서 최고속도가 393km/h에 이르는 AH-56 샤이엔이 나와 있었던 관계로 크게 주목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에 실망하지 않고 연구를 계속한 시콜스키사.



흠, 이걸론 뭔가 부족한데? 


테일로터가 걸리적거리는데 이걸 떼면 항력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고속을 위해 1973년, 이중반전로터를 채택한 S-69를 만들어 보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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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8백 마력의 Pratt & Whitney Canada PT6T-3 터보샤프트 엔진 1기에, 



3천파운드 추력의 Pratt & Whitney제 J60-P-3A 터보제트 엔진 을 그것도 2기나 다는 사기템을 장착하여



헬리콥터계에서 마의 속도로 불리는 시속 500km/h를 처음으로 뛰어넘는 업적을 달성합니다. (최대속도 518km/h)



무힌지 방식의 이중반전로터(ABC / Advanced Balde Concept)가 달려서 기술적으론 당대 최고의 헬리콥터 칭송을 받게 되고요.



힌지는 로터 블레이드가 로터 축에 고정된 채 각도와,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게 하는 장치인데요. 



이걸 없앴다는 건, 쉽게 이야기 하면 차에서 파워스티어링을 빼고도, 파워스티어링이 달린 차량과 유사한 핸들링 성능을 구현했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덕분에 두 로터 간의 간격을 극단적인 수준으로 낮춰 항력을 상당히 많이 줄일 수 있었지요.



www.sikorskyarchives.com




하지만, 무힌지(rigid rotor)의 동축반전 로터는 지금도 구현하기 힘든 너무 높은 난이도의 기술수준이었고 



(실제 비행환경에서는 로터가 이리저리 마구 휩니다. 조종이 쉬울리가 없어요)



1973년과 1975년에 각각 한 대씩 총 두 대가 제작된 후, 더이상 개발은 이뤄지지 않은 채 1981년 프로그램은 폐기되고 맙니다.



하지만 시콜스키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의지의 시콜스키사. S-69에서 큰 희망이 보이지 않자 1970년대 중반부터 더 독특한 고속 헬리콥터 개발에 착수합니다.






바로 S-72 RSRA라고 불리는 기체입니다.



사진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건 뭐.... 헬리콥터라고 보기에는 너무 많이 나간 수준의 항공기에요.



거대한 주익, 동체 옆에 달린 대형 터보팬 엔진에 일반 고정익기를 떠올리는 크기의 대형 수직미익 등등. 일반 비행기로 오인받을 수준의 독특한 기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워.... 이건 뭐 로터만 없으면 영락없는 고정익긴데?



gallery.vtol.org




근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S-72는 로터 없이도 스스로 비행이 가능한 기체거든요. 훗 로터는 그냥 거들뿐.



핵심은 바로 X윙이라 불리는 대형 로터에 있었습니다. 



처음 이륙시에는 일반적인 헬리콥터 처럼 로터가 작동하다가, 일정 이상의 속도가 되면 더이상 회전하지 않고 고정되어 양력을 만들어 내는 컨셉입니다.



dfrc.nasa.gov




원래 X-wing는 로터를 비행기의 날개로 쓰고자 개발되던 DARPA에서 지원하는 록히드마틴의 별도 프로젝트였는데, 



비슷한 시기, 비슷한 컨셉으로 개발되던 시콜스키 S-72와 합쳐지면서, 실현 가능성이 급격하게 높아진 상황이었습니다. 



어쨌던 회전익기와 고정익기의 장점만 취하는 형식이었으니까요.



이게 성공했으면 지금 하늘에 V-22 오스프리가 아니라 S-72가 날고 있었겠지만, 아시는대로 현시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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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의 로터는 스스로 회전하다 보니, 마치 선풍기의 날개와 같은 형상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게 고정 되면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아래로 바람을 밀어내는 장비가 정면에서 바람을 받다 보니, 한쪽은 양력이 반대쪽은 항력이 생기는 일이 생겼던 거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앞뒤 단면의 형상이 동일한 로터를 도입하기도 하고, 로터 외부의 공기 흐름을 조절하기 위해 고압 공기 배출구를 배치 하기도 하는 등의 아이디어가 도입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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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익 -> 고정익으로 변신하는 과정에서의 비행특성이 제어컴퓨터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나면서



결국 일반 로터가 달리 S-72까지는 어찌어찌 해서 만들어졌다가, X-wing이 장착된 버전은 비행 시도도 해 보지 못하게 됩니다. 



1976년에 시작된 S-72 RSRA 프로젝트는 단 두 대의 시험기만 만들어 진 채 12년 뒤인 1988년 종료되게 되지요.



시콜스키의 도전이 여기서 끝났다면 '의지'의 시콜스키가 아니죠.



시장의 요구가 '고속'이 아닌 '민첩함'으로 바뀌었음에도, 시콜스키는 자체 예산을 꾸려 고속 헬리콥터의 연구를 계속 이어가는데요.



airandspace.si.edu




AH-66 코만치의 개발로 정신이 없던 와중에도 X-2 라는 시험용 고속 헬기 연구에 착수하고,



결국 2008년 완성된 첫 시제기가 463 km/h를 내는 기록을 달성하게 됩니다. 



속도만 보면 예전의 S-69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보조 동력 없이 추력 6천 파운드 짜리 터보샤프트 1기 만으로 달성했다는 점. ABC 동축반전 로터를 실용화 했다는 점에서, 시콜스키의 의지가 결국 빛을 낸 기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기존의 회전익 기술로만으로도 거의 500km/h에 육박하는 속도를 낼 수 있는 곳은, 유로콥터 외에는 없다고 봐도 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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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2는 2011년 은퇴해서 현재 더 이상 비행하고 있진 않습니다만, 이를 바탕으로 개발된 S-97이 미육군 차기 스카웃 헬기에 입찰하는 걸 보면,



당장 돈이 안 되더라도 폐기하지 않고, 꾸준히 기술을 축적해 가는 시콜스키의 의지 때문에라도, 언젠간 시콜스키의 고속 헬기가 미 전장을 나는 날이 오지 않을 까 싶은데요.



무려 50년 넘게 이어진 기술개발인데, 절대 그냥 썩혀두진 않을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