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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드 스포츠/레이싱

강력한 사조직으로 F1 전권을 장악한 모터스포츠계의 황제 2편


버니 에클레스톤, FOCA를 통해 F1을 두 손에 거머쥐다



지난 포스팅에서 이어집니다.



1970년대 F1의 팀들은, 결국 두 조직으로 갈라지고 맙니다. 



버니가 이끄는 FOCA와, FIA가 만든 FISA 이었지요. 



spiegel.de




버니가 영국 출신이다 보니, FOCA에는 주로 영국계 F1 팀들로 구성 되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F1을 주관하는 FIA가 유럽대륙, 프랑스에 위치하고 있어, 대륙 밖의 섬나라 영국 팀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신이 팽배 했거든요.



어차피 매 그랑프리 마다, 주최국과 실무 교섭을 할 '단일 창구'가 필요하기도 한 마당이라, 사조직임에도 불구하고 FOCA는 급속도로 세력이 확대 됩니다.



하지만 FIA는 FOCA를 인정하지 않았고, 유럽 팀들을 규합해서 FISA를 만들어 견제를 시작합니다.



두 조직의 대립은 FOCA는 등장한 초기부터 예견되어 있었던 거죠.



* FOCA : the Formula One Constructors' Association

* FISA : the Fédération Internationale du Sport



F1Network.net




두 조직 간의 첫 번째 대형 사건은 1980년에 일어났습니다.



발단은 5전 벨기에와 6전 모나코 그랑프리였지요. 당시 FOCA 팀 소속의 일부 드라이버들이 ‘드라이버 브리핑’에 참석하지 않았는데요.



FOCA를 벼르고 있던 FISA는 이걸 빌미로, 해당 드라이버에게 벌금을 부과했고, 인정하지 않을 경우 라이선스를 박탈하겠다며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www.redbull.com




그리고 FOCA의 거센 반발이 있자, 다음 경기인 7전인 스페인 그랑프리에서 FISA 소속 팀을 철수시키는 결정을 내립니다. 



동시에 스페인 그랑프리는 전체 시즌에서 포인트를 계산하지 않는 논-챔피온십 그랑프리로 격을 낮춰 버리지요. 



결국 스페인 그랑프리는 반쪽짜리 대회가 되고, 이 여파로 다음해의 관중이 급감하는 타격을 입게 됩니다.



thejudge13.com




이 사태는 이듬해인 1981년 2월에 있었던 남아공 그랑프리에서도 재현 됩니다.



FISA에서 남아공 경기의 일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소속팀 철수를 결정하고, 



'포뮬러 리브라 모터 레이스'라는 해괴망칙한 이름으로 격하된 경기는, FOCA 팀들만이 참가한 채 반쪽의 대회로 치뤄지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하나 듭니다. 



F1의 주관 단체는 FIA인데, 굳이 FISA의 팀들을 빼낼 필요가 있었을까요? 



견제가 목적이라면, FOCA 팀들의 참가를 제한하면 되는 것 아니었을까요?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는지를 보려면, 1980년 1981년의 경기 결과를 보면 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1980_Spanish_Grand_Prix




1980년 그랑프리 우승 횟수를 보면 총 14경기 중에 9경기를 윌리엄-포드팀, 브라밤-포드팀 두 팀이 싹 쓸어갑니다. 두 팀 모두 FOCA 소속에 영국계 컨스트럭터이지요. 



1981년도 상황은 비슷해서 15경기의 절반인 8경기를 영국계 팀들이 가져가게 됩니다. 



자체 엔진이 있던 알파 / 르노 / 페라리와 달리, 영국 팀들은 엔진을 외부에서 공급 받아야 했습니다. 성능 향상을 위해서는 엔진이 아니라 샤시의 능력을 극한으로 끌어 올려야 했지요. 



en.wikipedia.org/wiki/Williams_FW07



대부분의 영국계 팀들의 선택은 '에어로 다이나믹스' 였고, 그 결과 1970년대 후반의 F1은 영국계 팀들의 독무대였습니다. 



직선코스에서는 다소 성능이 떨어 지더라도 코너에서 따라잡는 방식으로 독특하게 진화한 탓이었습니다.



영국계의 독주는 FIA의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관객의 수만 해도 영국 보다는 유럽 대륙이 더 많았고, 결정적으로 유럽팀들은 양산차를 생산하는 대형 메이커였습니다. 



f1-history.deviantart.com



스폰서쉽의 규모, 모터스포츠의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FIA는 반드시 영국계를 견제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성능이 뛰어난 FOCA 차량들을 억지로 출전 금지 시킨다면, F1의 수준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나온 고육지책이 '트집을 잡은 뒤 FISA팀을 철수 시키는' 전략이었던 겁니다. 



규정을 안 지켜서, 일정이 맞지 않아서 등등 갖은 핑계를 댄 후, 일부 대회의 격과 규모를 축소시키는 방법으로 FOCA를 압박해 나갑니다.



www.classiccourses.fr



그럼에도 불구하고, FOCA의 위상은 더욱 높아만 갔습니다.



F1의 규정 틈을 파고 들어, 샤시를 개량하고, 완성된 차량이 FISA의 팀을 압도하면, FIA는 규정을 뜯어고치는 일이 무려 4년 동안 반복됩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었습니다.)



1982년 FOCA쪽에서 사용된 워터쿨러 브레이크는 꽤나 유명한 사례로, 



http://dwmotorsport.blogspot.kr




언뜻 보면 물을 사용하는, 새 기술의 브레이크를 쓴 것 같이 보이지만, 



실제로 물은 브레이크 냉각에 사용되지 않고, 경기 초반에 버려지는 용도로 탑재되어 차량의 무게를 줄이는 데 기여한, 일종의 눈속임 이었습니다.



이 분쟁을 총 지휘했던 사람이, FOCA의 사령관이 버니 였던 건, 두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버니는 F1에서 어느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갖게 됩니다.



http://en.espn.co.uk



이후 두 집단 간의 항쟁이 극에 달한 1984년, F1의 관객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부작용이 발생하는데요, 당연하지요. 월드컵에 유럽팀들이 빠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누가 보러 오겠습니까.



F1가 폭망할 걸 우려한 FISA는 결국 FOCA에게 손을 내밀고 '콩코드 협정'이라는 타협을 하게 되는데요. 



콩코드 협정이라는게 일반에 공개되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습니다만, 



기간을 두고 여러 번의 협정 개정이 이루어 졌고, 이 과정에서 버니가 결국 F1의 상업권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레이서 출신의 한 사나이가, F1의 변화를 정확히 읽고, 파벌을 조직해서 F1을 황제로 군림했습니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쓰여 진다고 합니다. 



자료를 찾아보면, 버니가 F1의 실질적인 소유자가 되면서, F1의 상업화가 활성화 되었다는 긍정적인 내용들이 많은데요. 



버니가 F1을 갖기 위해 개인적으로 FOCA라는 '파벌'을 적절히 사용 했다는 사실 만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 FOM은 버니 개인의 상업권을 관리하기 위해 생긴 영리단체라는 것, 



버니가 FOM를 통해 벌어들인 돈이 4조원이라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 해 주지 않을까요....



http://www.hellomonaco.com




어제에 이은 오늘의 결론



조직이 있으면 권력이 있고, 권력이 있으면 돈이 따른다는 단순한 진리는, 모터스포츠 세계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