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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공학/선박

2차 대전에 활약한 항공모함이 아니었던 항공모함


원래는 항공모함이 아니었던 각종 항공모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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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레 항공모함하면 슈퍼캐리어니, 원자력 항모니 하면서, 축구장 3개 크기의 갑판을 가진 10만톤급 항모를 당연하다고 생각하기 쉽지요.



하지만 한가닥 한다는 영국, 러시아, 중국이 한 척씩 가진 정규항모가 7만톤 안팎이고 



프랑스는 원자력 추진이면서 중형 사이즈인 4만톤인 항모 한 척을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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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만 톤급 10여척을 굴리는 미국이 새삼 대단해 보일수 밖에 없는데요.



이런 미국이지만, 2차대전 당시만 해도 미해군 항모의 대부분은 2만톤급 안팎이었고,



심지어 이들 중에는, 원래 상선이었다가 개량된 녀석들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나요.



HMS 아거스 / en.wikipedia.org




사실, 항공모함이라는게 딱히 이거다라고 정의되기 전 시절에는, 미국 뿐만 아니라 다른 열강 역시 전함이나 순양함을 개조해서 항모를 만들었습니다.



바다를 지배했던 영국의 첫 정규항모를 보시지요. HMS 아거스는 1918년 취역한 영국의 항공모함인데요. 




개장 초기의 HMS 아거스 / en.wikipedia.org



사진을 보면 우리가 아는 항공모함과는 사뭇 다른 형태를 가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14년 기공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 여객선이었기 때문입니다. (Conte Rosso)



1차대전이 발발 하면서 영국이 사들이게 되고, 유보트를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긴급히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게 됩니다.



덕분에 아일랜드도 없고 덩치도 껑충한, 지금은 보기 힘든 특이한 형상의 비행 갑판을 가지게 되었지요.



호커 허리케인이 탑재된 HMS 아거스 격납고 / en.wikipedia.org





그래도 효율적인 항공기의 이착륙을 위해 연돌을 함 좌우현에 배치 하는 등, 항공모함의 기틀을 닦는데 큰 공을 세운 함선입니다.



1차 대전 종전 직후인 1918년에 완성되면서 빛을 보지 못했지만, 



넓은 비행갑판과, 하부 격납고가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첫 항공모함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아, 167미터의 비행갑판에도 불구하고 만재 배수량이 1만 5천톤이었는데, 당시만 해도 장갑갑판의 개념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군요.




CV-1 랭글리 / en.wikipedia.org




이를 가만히 보고 있을 미국이 아닙니다. 영국과 유사한 정규항모인 CV-1 랭글리를 1922년 진수시킵니다. 



1차 대전 전만 해도 영국은 세계 패권을 쥔 해양 국가였는데요. 



영국이 시도한 항모건조는 당시만 해도 최신 트랜드였고, 대서양 건너 영국을 견제해야 하는 미국에게는 모방은 자존심이 아닌 생존의 문제였습니다. 



(영일동맹으로 인해 태평양과 대서양 양쪽의 압박이 거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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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항모건조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면서 석탄 운반선인 USS 주피터를 CV-1 랭글리로 개조하게 됩니다.



단층 상부 비행갑판, 하부 격납고, 원할한 이착륙을 위한 연돌 배치까지, CV-1 랭글리는 HMS 아거스와 상당히 유사한 디자인을 가지고 있지요.



랙싱턴급 2척과 같이 정박중인 CV-1 랭글리 (하단) / en.wikipedia.org




다만 1922년은 이미 1차대전이 끝난 시점인지라, 랭글리는 시험항모의 성격이 강했는데, 



여기서 얻은 운용 경험이 후계함에 고스란히 전수되면서, 대전초 최고의 항모인 렉싱턴급 건조에 밑거름이 됩니다.



말로는 조금 허무했는데,



태평양 전쟁에서 정찰 임무를 수행 하다가, 1942년 일본의  G4M Betty 1식 육상공격기 폭탄 5발을 맞고 장렬하게 침몰 합니다.



항공모함이 어뢰도 아니고 지상공격용 폭탄이라니요;;;;



CV-1 랭글리의 침몰 / en.wikipedia.org




여담입니다만, 주피터 시절 1만 9천톤이었던 만재 배수량이, 항모로 개장 되면서 1만 4천톤으로 뚝 떨어집니다.



군함은 여러 무장이 고정으로 장착되기 때문에 부피기준의 상선 배수량과는 조금 다른 무게기준을 사용하는데요.



이를 감안하더라도 군함이었던 석탄운반선 주피터와의 배수량 차이는 쉽게 이해기 힘들지요.





이건 당시에 있었던 체결된 워싱턴 군축조약을 조금 깊게 살펴봐야 합니다.



전함이나 순양함이 항모로 개조되는 일의 원인으로, 1차 대전 이후 맺어진 워싱턴 군축조약이 결정적이었거든요. 



워싱턴 군축조약 / en.wikipedia.org




1차 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나면서 5대 열강인 영국, 미국, 프랑스, 일본, 이탈리아가 한 자리에 모입니다.



세계 대전이 일어난 대에는 열강간 세력팽창이 문제 였다는데 인식을 같이하고,



다시는 큰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각국 해군력을 감축하기로 협정을 맺는데요. 이게 바로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입니다.



폐함 결정이 내려졌던 HMS King George V / en.wikipedia.org




배수량을 기준으로 국가간 쿼터를 두면서, 



나라당 대략 5대 안팎의 대형 전함이 폐기 되는 역사적인 일이 일어나지요. (영국만 단독 폐함 수량이 무려 20여척 입니다 ㅎㄷㄷ)



항공모함으로 만들었다가 여차하면 전함으로 둔갑시키는 일을 방지하기 위해 항공모함의 배수량에 기준을 두는데요. 



배수량 쿼터와 항모 기준이 뒤섞이면서 CV-1 랭글리는 낮은 배수량을 갖게 되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아카기급 순양전함의 개조 / en.wikipedia.org




여기에 항모에는 추가로 예외 규정도 달리게 됩니다. 체결 당시 건조 중인 함정을 항공모함으로 개조 한다는 내용이 그것입니다.



건조 중인 함선을 폐기하긴 아까우니 항모로 개조해서 사용하자는 취지였고,



그래서 등장한 대표적인 항모가 영국의 커레이저스급(퓨리어스) 항공모함과 일본의 아카기급입니다.



이들 항모는 베이스가 순양전함이다 보니 지금은 보기 힘든 독특한 복층 갑판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요.



HMS 퓨리어스의 복층 갑판 / en.wikipedia.org



3층갑판 구조의 아카기 항모 / en.wikipedia.org




심지어 아카기급의 경우 3층 짜리 갑판을 가지고 있을 정도입니다. 1,2층 에서 항공기를 이함시키고, 3층의 갑판에서 항공기를 착함 시키겠다는 구상이었지요.



하지만 운용해보니 결과는 OTL



원 설계가 항공모함이 아니었던 만큼, 다른 구조적인 문제도 발생해서, 



단층갑판으로 개조된 항모 아카기 / en.wikipedia.org




아카기는 갑판과 평행하게 나 있는 연돌이 문제가 되어, 전속시 발생하는 배기가스가 선체 내에 내에 다시 유입되는 일도 있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이들 항모는 2차 대전 중 몇차례 현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문제를 차근차근 해결해 가게 됩니다.



아, 깜빡했는데, 미국의 본격 항공모함인 렉싱턴급도 초도함 CV-2 렉싱턴은 순양전함으로 건조되던 걸 설계 변경 했었네요;;;;



미국의 두번째 정규항모 CV-2 렉싱턴 / en.wikipedia.org




1차대전이 터지자 급하게 만들어졌던 영국의 첫 항모,


영국을 따라하는 와중에 만들어진 다른 열강들의 항모,


워싱턴 군축조약으로 어쩔수 없이 개장된 여러 항모등,


당시 수상함의 항모 개조는 어쩔 수 없는 특별한 시대의 흐름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호위항모 HMS 오더시티 / www.historyonthenet.com




그런데 의외로 2차대전이 터지면서 일반 선박을 개조한 항모가 다시 등장하게 됩니다.



1940년 영국이 냉동 화물선을 개조해 오더시티라는 '호위항모'를 만들어 내거든요.



나포당시의 냉동 화물선 하노버 / en.wikipedia.org




원래는 독일로 부터 나포한 하노버라는 선박이었는데,



유보트의 이리떼 전술에 수송선단이 추풍낙엽처럼 수장당하자, 수송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20여대의 초계기를 탑재하는 일종의 '간이항모'로 급하게 개조하게 됩니다.



동급의 호위항모 HMS 어벤저2 / fr.wikipedia.org




정규항모, 경항모라는 어엿한 함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위항모를 만든 걸 보면, 일반 선박을 개조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음을 알 수 있는데요.



베이스 선박 자체가 저속의 화물선이기 때문에 일반 함대와의 작전에는 적합하지 않았고, 오로지 수송선단의 호위를 위해 사용된 독특한 항모로 남게 됩니다. 



카사블랑카급 호위항모 CVE-60 USS 과다카날 / en.wikipedia.org




여담입니다만, 명확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값싸고 빠르게 건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처음부터 항모로 설계된 미해군 호위항모인 보그급은 44척이, 카사블랑카급은 2년 동안 50척이 건조되는 기염을 토하기도 합니다.



초계임무, 상륙전 지원임무등에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대전 말기까지 두루 사용된 호위항모지만 시작은 상선이었다는 사실.



CVE-1 USS 롱아일랜드 / en.wikipedia.org



영국의 HMS 오더시티를 모방한 미국의 첫 호위항모 롱 아일랜드급 역시, 1번함이 화물선을 개조해서 건조 되었던 걸 보면,



2차대전이 터지면서 미국이나 영국이나 어지간히 급하긴 급했던 모양입니다;;;










P.S. 글의 흐름을 위해 따로 언급하진 않았습니다만, 


미국의 첫 정규 항모 CV-1 랭글리의 취역이 1922년 3월이었고, 


일본의 첫 정규 항모 호쇼의 취역이 불과 9개월 뒤인 1922년 12월 이었습니다. 


워싱턴 군축, 런던 군축협정을 파기한게 일본이기도 하니,


1차 대전 후 태평양에서의 미일간 항모전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을런지도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