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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공학/비행기

미국과 러시아가 치열하게 경쟁했던 우주 탐사선 발사의 역사


루나에서 매리너로 이어진 미-소 간의 외계 천체 탐사경쟁



인간이 처음으로, 지구 이외의 천체에 '탐사선'을 보낸 건 언제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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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착륙을 전후로 한 1960년대 중반 정도가 아닐까 싶은데, 



사실 실제 발사 성공은, 생각보다 빠른 1959년에 있었습니다.



그것도 미국이 아니라 구 소련이 발사한 '루나 2호'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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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중반에 시작된 독일의 로켓기술은 전쟁으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고



전후 연합군에 노획된 독일의 V2 미사일은 우주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무섭게 진화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자체 기술로 발사체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던 반면,



소련의 경우 V2를 개량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서, 사상 최초 인공위성 발사 성공, 첫 탐사선 발사 성공,



그리고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를 연이어 배출하는 쾌거를 올리게 됩니다.






미국은 뒤졌다는 조바심에 국력을 우주개발에 총결시키고, 



결국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을 성공시키면서 극적인 반전에 성공하게 되지요.



이런, 시작하자마자 이야기기 샜네요....



여튼, 문레이스가 시작 되기 한참 전부터, 미국과 소련은 체제의 자존심을 걸고 우주탐사에 올인 중이었는데요.



mars.nasa.gov



이는 외행성 탐사 (수성과 금성이 포함되지만 편의상 외행성이라고 하겠습니다.) 에서도 마찬가지여서,



미소 양국은, 지구 외의 천체를 탐사하기 위해 미친 듯이 무인 탐사선을 보내는 경쟁을 시작합니다.



1959년 러시아가 루나 2호를 성공시키며, 최초로 달에 탐사선을 보내자, 



미국은 바로 방향을 틀어 태양계 행성을 목표로 정했고,



1962년 부터 차례로 금성, 화성 수성에 무려 10여기의 탐사선을 보내기에 이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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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매리너 프로그램이라 불리는 우주 탐사선 계획이었습니다.



총 10기가 계획 되었던 매리너 프로그램은


3기는 금성으로, 


6기는 화성으로, 


제일 마지막 1기는 수성을 향하면서,



2-3년마다 두 대씩, 거의 1년에 1대 꼴로 지구밖 천체에 탐사선을 발사 시킵니다.



지금의 NASA가 예산 부족으로 몇 년에 한 번씩 탐사선을 보내는 걸 생각한다면... 정말 올인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군요;;;



덕분에 매리너 프로그램은 몇 가지 기념비적인 기록을 달성하기도 했지요.



1962년의 매리너 2호는 인류 최초 금성 탐사에 성공합니다.


1964년의 매리너 4호는 인류 최초 화성 탐사에 성공합니다.


1971년의 매리너 9호는 인류 최초로, 화성 위성 궤도에서의 표면지도 제작에 성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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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마지막에 발사된 매리너 9호의 경우, 



행성을 스쳐지나가면서 잠깐 관측했던 이전의 탐사선과 달리, 



최초로 행성 궤도를 돌며 장기간 탐사에 성공한 첫 우주 탐사선이었지요. 지구밖 천체에 인공위성을 올렸다는데서, 우주개발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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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1962년부터 1971년까지 딱 만 10년안에 일어난 일로, 정말 정신없이 우주탐사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는데요.



이걸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로스케 성님이 아닙니다.



미국의 매리너 9호가 발사되기 불과 1년 전인 1970년에 금성을 목표로한 베네라 7호를 발사하면서



인류 최초로 행성 표면에 탐사선을 착륙시키는 성과를 일구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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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60km로 처박히는(?) 착륙 미스에도 불구하고, 



금성이 섭씨 465도에 90기압의 죽음의 행성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확인해 주었습니다.



착륙 후 23분간 살아있다가 장렬하게 산화했지만, 



인간이 만든 물체가 다른 행성에 무사히 착륙한건 베네라 7호가 처음이었고, 행성의 표면 기후를 탐사한 것도 베네라 7호가 처음이었습니다. 



소련의 탐사선 발사 기술도 만만치 않다는 걸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의문 하나가 생깁니다. 



베네라가 7호에 와서 성공했다면, 1호부터 6호는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여기서 구소련 우주개발의 흑역사가 드러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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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라 계획'은 미국의 '매리너 계획'에 대항한 소련의 금성 탐사 프로그램인데, 



1961년부터 1969년까지의 초창기 12번의 탐사선 발사는 몽조리 실패했거든요.



1969년 베네라 5호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금성 착륙 이라고 쓰고 충돌 이라고 읽는다 에 성공하게 되었지요.



이나마 착륙 직후 장비가 고장나면서, 성공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반쪽짜리 성공이었습니다.



연속된 실패를 공개하기 싫었는지 



베네라 1호 이후 베네라 2호, 베네라 2.1호 (2MV-1 1), 베네라 2.2호 (2MV-1 2)등의 이상한 코드네임을 붙였고,



결국 베네라 1호와 5호 사이에는 다섯 대가 아닌 총 열 한 대의 탐사선이 자리하게 됩니다.



12번 중 11번의 실패면, 퍼센트로 불과 10%가 안되는 성공률이지요;;;



반면 미국의 매리너는 총 10회 발사에 일곱 번 성공했고, 불과 세 번만 실패했습니다. 무려 70%의 성공률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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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는데도 꾸역꾸역 프로그램을 진행한 소련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깔끔하게 성공시키는 미국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베네라 5호 이후 절치부심에 성공한 소련은 베네라 7호부터 16호 까지는 불과 두 번만 실패하는 기염을 토하게 됩니다. 



10%에서 85%라니요;;; 바보가 천재가 된 것 만큼 놀라운 발전이 아닐까 싶군요. ㅋ



냉전시대 미소의 우주개발 경쟁이 치열했음을 보여주는 반증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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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성공의 환희도 잠시, 우리가 아는 닐암스트롱의 1969년을 기점으로, 



행성탐사 분야에서 미국은 이미 소련에게 넘사벽의 존재가 된 상태였습니다.



소련은 문레이스를 포기하고 또 다른 분야인 우주정거장으로 눈을 돌리게 되지요.






........이야기가 너무 길어져서 부득이 편을 나누어야 할 것 같아요.



후속 편에서는 점점 진화해 갔던 미국의 외행성 탐사와, 



ISS의 기반을 닦았던 러시아의 우주정거장의 흐름에 대해 살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