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장의 역전노장 A-1 스카이레이더
A-1 스카이레이더는 매니아들에게만 알음알음 알려져 있는 꽤나 멋없는 프로펠러 전폭기 입니다. 짜리 몽땅하면서도 바보같이 거대한 기체에 무식하게 커보이는 엔진 덕분에, 기억에 그렇게 남지 않는 기체이지요.
A-1 스카이레이더 / pl.wikipedia.org
생긴 것도 그렇지만 개발된 시기도 문제였습니다. 2차대전이 끝나서야 완성되었는데, 대전 직후는 막 제트기가 개발되어 전장에 투입되기 시작한 시기였습니다. 전쟁도 끝났는 데다가 프로펠러가 아닌 제트기들이 개발되고 있는 시기였기 때문에 대단히 존재감이 없었습니다.
45년 첫 등장부터 57년 생산 종료까지 12년간 딱 3,000대 (정확히는 3,180대)가 생산 되었는데 이 수치는 당대 걸작 전투기인 P-51 머스탱이 1만 5,000대 이상 생산된 것과 비교하면 거의 만들지 않은 수준에 가깝습니다.
F-86 세이버 / www.labusas.org
잠시 사족인데, 사실 3,000대도 적은 수준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적단 소리입니다. 이틀에 한대는 생산되었다고 봐야지요. 단순 비교는 그렇지만 현대 기술의 총아인 전투기 중에서 베스트셀러인 F-16은 지금까지 약 5,000여대가 생산되었습니다.
F-16 / www.f-16.net
여튼, 등장시기가 애매했던 덕분에 스카이레이더는 2차대전에서는 활약하지 못하고, 종전직후 발발한 한국 전쟁 때 반짝 사용되었습니다.
제트 전투기들의 완성도가 높지 않아 프로펠러기들이 대지공격기로 활약하던 시절입니다. P-51 머스탱, F-4U 콜쉐어등이 우수한 항속거리와 폭장량을 이용해서 CAS (Close Air Support) 미션에 투입되었습니다. 스카이레이더는 애초 공격기로 개발된 탓에 맹활약을 할 수 있었고요.
항모 갑판의 A-1 및 F-4U / www.planeaday.com
그도 그럴 것이 2,000마력을 조금 넘던 기체들과 달리 이미 태어날 때부터 2,600마력이라는 말도 안되는 출력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인데요. (나중에 3,000마력까지 업글됩니다)
얼마나 출력이 센지 이륙할 때 토크 스티어를 이겨내기 위해 조종사들이 방향타를 반대로 조작해야 했다고 알려집니다. 여유로운 출력 덕분에 장갑으로 떡칠이 가능해서 생존성도 대단히 뛰어났다고 하지요.
A-1 스카이레이더/ www.warbirdinformationexchange.org
뭐랄까 마치 저번의 P-47 썬더볼트의 재림을 보는 것 같군요. 무식하게 튼튼하고 엔진이 너무나 강력해서 대공포 몇 대쯤이야 ‘맞아주지 뭐’ 라는 마인드로 유유히 비행하는 이미지입니다.
실제 A-1에서 재미를 본 미 공군 이런 설계 사상을 A-10에 전승시키기도 했지요. 탱크킬러로 알려진 A-10 썬더볼트는 1차 걸프전때 맹 활약하면서 이라크 지상군을 쌈싸 먹고 다녔습니다.
A-10 썬더볼트 / defwalls.com
기체가 날 수 없을 지경이 되도록 뚜드려 맞고도 유유히 기지로 기환하여 정비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습니다. 지상(?) 최대의 CAS 전술기의 계보가 사실은 P-47/A-1에 두고 있었다는 사실.
(아… 참고로 A-10은 미공군, A-1은 미해군, P-47은 미 육군 소속입니다. 제조사도 멕도널 더글러스/리퍼블릭(페어차일드)으로 다르고요. 엄마 아빠가 모두 다른 셈이네요)
P-47 썬더볼트 / www.supercompressor.com
이야기가 잠시 샜는데, A-1의 본격적인 활동은 의외로 10여년 뒤인 베트남 전쟁에서 두드러집니다. 다들 아시는대로 베트남 전은 제트기 운용의 현대화가 확립된 시기입니다.
대공 미사일이 사용되면서 BVR, 시야밖 공중전이 현실화 되었고, 기체 자체의 기술도 한계단 뛰어오르면서 A-6 인트루더 A-7 코르세어 F-4 팬톰 같은 명 전투기가 탄생하기도 했습니다.
www.aircraftinformation.info
www.sflorg.com
하지만 초기만 하더라도 대 지상공격을 지원할 항공기가 마땅치 않았습니다. 센추리 시리즈의 끝판왕인 F-105 선더치프가 있긴 하지만, 매우 값비쌌고, 위험한 미션에 투입되면서 참전기의 절반이 격추되는 손실을 입기도 했습니다.
체공시간이 길고, 맷집이 좋으면서도 폭장량이 괜춘한 기체가 사실상 거의 없었지요. (이는 현재의 A-10 썬더볼트도 상황이 비슷합니다. 대체할 항공기가 없어 수명연장 프로그램을 통해 거의 30년 가깝게 사용 중입니다.)
CAS 중인 A-1 스카이레이더 / www.mission4today.com
때문에 이후 A-6, A-8, 의 후속기들이 나오기 전까지 노익장을 과시하며 전선을 누볐습니다. A-1의 성능을 엿볼 수 있는 유명한 무용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미그기 격추 사건입니다.
대충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1965년 6월 4대로 편대를 이루어 조종사 구출 지원 미션을 수행하던 A-1 스카이레이더.
www.seaforces.org
이 중 클린턴 존슨 대위가 몰던 3번기는 무전기가 고장 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편대와의 교신이 불가능 한 상태에서 미그기 출몰 지역으로 진입했지요.
이 때 상공에서 스카이레이더를 기다리고 있던 Mig-17이 먹이를 발견하고 급하강을 시작합니다. 4대의 스카이레이더는 즉각 회피 기동에 들어갔고 미그기와의 조우를 알 턱이 없는 존슨 대위는 인지 하지 못한 상태로 교전에 들어갔는데,
www.thisdayinaviation.com
직감적으로 뭐지? 이러면서 이리저리 도망 다니다 우연히 동료기체를 추격하던 Mig-17의 꽁무니를 잡게 됩니다.
기관포로 격추를 시도했던 존슨 대위. 그러나 미그기는 고속이면서 짧은 회전반경을 가진 경쾌한 기체. 급선회를 통해 head to head로 머리를 보고 서로 달려오는 상황이 만들어집니다.
서로 스쳐지나가게 되는 순간 두 파일럿은 상대를 향해 기관포를 발사하게 되고. 멧집 좋은 스카이레이더는 피격에도 불구하고 반격을 통해 결국 Mig기를 격추 시키게 됩니다.
www.midwaysailor.com
스카이레이더의 멧집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예피소드이자. 베트남전에서나 겪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제트기 격추실적입니다. 프롭기도 아닌 레시프로기가 제트기를 격추하다니요….
이외에도 적의 박격포탄이 떨어지는 공군기지 활주로에 착륙해서 동료 조종사를 구해낸 버니 피셔 소령의 스토리도 있습니다만. A-1의 멧집이 뒷받침이 되었기에 강행할 수 있었던 활약입니다.
commons.wikimedia.org
후속기들이 등장하기 전까지 미 해군 공격력의 한 축을 담당했었기에 뒤늦게 빛을 본 A-1 스카이레이더.
레이더 장착 등의 다양한 배리에이션으로 활약하다 대전 후기에는 전량 공여되어 남배트남 공군 소속으로 이전되게 됩니다. 스카이레이더만의 트레이드 마크인 배기 마스킹(?)이 유난히 기억에 남는군요 ^^
commons.wikimedia.org
www.airliners.net
'기타공학 > 비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군특수비행단 블랙이글이 돋보인 2015 ADEX를 다녀오다 (6) | 2015.10.27 |
---|---|
가장 빠른 유인정찰기 SR-71 블랙버드에 달려있는 렘제트 엔진이란 (14) | 2015.09.07 |
시끌시끌한 강원소방본부 헬기 선정사업. 과연 수리온이 옳은 것일까 (8) | 2015.08.28 |
헬리콥터로 극한의 기동을 선사하는 각국의 특수 기동 비행대 (0) | 2015.08.23 |
제로 G 프로그램, 상공에서 만끽하는 유사 무중력 체험 (9) | 2015.08.11 |
노인 학대에서 어르신 회춘으로. 마개조의 끝판왕 브라질 F-5EM (6) | 2015.07.02 |
[엔진] 희대의 사기 캐릭터 프랫&휘트니 R-2800 엔진 (0) | 2015.04.26 |
[비행기] 노인학대 시리즈, 한국에서 면허생산 된 전투기들 (4) | 2015.03.02 |
비행기는 엔진 시동을 어떻게 거는 것일까? (0) | 2014.09.14 |
항공기 엔진의 축마력과 추력의 차이 (5) | 2014.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