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들 진화의 끝판왕, 전자식 파워스티어링 휠
핸들이라 불리 우는 스티어링 휠은 자동차의 바퀴를 돌리기 위한 장치입니다.
약 1:20 전후의 기어비로 구성되어, 전륜 바퀴를 최대로 꺾기 위해서는 핸들을 세 바퀴 정도 돌려야 합니다.
이 경우 바퀴는 최대 54도 까지 틀어지게 되는군요.
forums.xkcd.com
핸들이 돌아가는 각도랑 실제 바퀴가 돌아가는 각도가 같으면, 덜 힘들고 편할 것 같은데... 굳이 왜 이런 수고를 하는 걸까요.
우선은 자동차 무게 때문에 그렇습니다. 일반 세단의 경우 차량 중량이 1.5톤에서 2톤에 육박합니다. 엔진이 앞쪽에 있으므로 얼추 1톤의 무게가 전륜에 가해지게 되지요.
만약 기어비를 1:1로 하게 되면 무거워서 핸들 자체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www.autozone.com
www.agcoauto.com
핸들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면 운전이 피곤할 수도 있습니다.
시속 100km로 달리다가 커피를 쏟아서 핸들을 살짝 건드렸다면? 조그만 충격에 차선이 바뀌면서 황천길로 갈 수 있겠지요.
그래서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야 하는 레이싱카 조차도 스티어링 기어비가 1:5 이상으로 되어 있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카트는 예외로군요. 기어비 뭐 이런 거 없습니다. 그냥 닥돌 1:1입니다. 아래 동영상을 보세요.
핸들이 너무 무거워 운전하기 힘들어요. 하는 운전자를 위해 개발된 방식이 파워 스티어링입니다. 엔진에 유압펌프를 달아 사람이 줘야 할 힘을 펌프가 대신 주는 방식입니다.
repairpal.com
펌프가 오일을 압축하여 대기하고 있다가,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면 왼쪽 밸브를 열어 유압을 보내주고, 오른쪽으로 돌리면 오른쪽 밸브를 열어주어 유압을 보내줍니다.
오일의 높은 압력의 도움을 받아 핸들을 손쉽게 돌릴 수 있습니다.
www.neoauto.lt
하지만 뭐든 것에는 등가교환이 있는 법. 편리를 얻은 대신에 잃은 것도 있습니다. 바로 엔진의 출력과 연비 그리고 복잡한 시스템입니다.
유압펌프를 움직이려면 동력이 있어야 겠죠?
펌프는 엔진의 플라이휠에 연결되어 회전력을 얻습니다. 엔진의 동력을 쪽 빨아 먹습니다.
www.underhoodservice.com
차가 있으신 분은 당장 한번 확인해 보세요.
유압식의 경우 핸들을 있는 힘껏 끝까지 돌리면, 엔진 rpm이 미세하게 떨어짐을 알 수 있습니다. 클러스터의 게이지로도, 소리로도, 차의 진동으로도 느낄 수 있지요.
www.guideautoweb.com
또 다른 등가교환은 바로 시스템입니다. 없다가 뭐가 달리니까 당연히 구조가 복잡해 지지요.
펌프가 있어야 하고, 오일을 전달해 주는 파이프가 있어야겠네요. 유압을 좌 우로 분할 해 주기 위한 밸브도 달려야 합니다.
오일 탱크의 역할을 하는 리저버라는 별도 통도 달아야 합니다.
grassrootsmotorsports.com
리저버는 조금 설명이 필요하군요.
펌프의 유압은 구조상 항상 일정하지 않고, 펌프의 회전수에 비례합니다. 100이란 압력이 항상 나오는 것이 아닌, 80-100-80-100 이런 식의 맥동이 생깁니다.
맥동을 잡아줄 완충 공간이 필요한데, 리저버가 이 역할을 담당합니다. 뿐만 아니라 핸들 회전에 의해 발생하는 불규칙한 유압도 같이 정리해 주는 역할도 하죠.
https://www.flickr.com/photos/paulmichaels79uf/3363710586
뭐가 많은 것 같지요? 그냥 편리를 위해 '출력'을 깎아 먹는 복잡한 것이 달렸다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등장한 다음 선수가 바로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 휠 입니다. 유압이 복잡하다면 모터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개념에서 출발하게 되었지요.
제일 먼저, 유압 펌프를 모터를 이용해 구동하는 방식이 먼저 나옵니다.
www.trw.com
이런 방식을 EHPS (Electronic Hydraulic Power steering) 라고 부르는데요.
동력이 엔진에서 모터로 교체되면서 연비가 좋아지는 효과를 불러왔습니다. 펌프가 꼭 엔진에 붙을 필요가 없어 위치선정에 자유도가 높아졌습니다. 유압 파이프라인도 짧아졌습니다.
1965년 포드에서 시도하였으나 양산에는 실패했고, 1980년대 일본 업체들에 의해 비로서 양산이 됩니다.
동력을 만들어 내는 ‘방법’만 바뀌었을 뿐, 기존의 유압 시스템은 계속 달려 있어야 했습니다.
news.pickuptrucks.com
이후, 유압을 버리고 아얘 모터로 힘을 보조하는 방식이 개발 되는데요. EPS (Electronic Power Steering) 혹은 MPDS (Motor Driven Power Steering) 이라고 불리게 됩니다.
1988년 스즈키 세르보에 처음으로 달려 나왔는데, 재미있게도 양산 시기가 앞서 나온 EHPS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은 궁극적으로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으로 발전할 운명이었던 겁니다.
잠시만요 '복잡한' 펌프를 '간단한' 모터로 대체하는데 50년이나 걸렸다고요?
네, 전자제품에 대한 신뢰도가 낮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이 당연한 시대가 되었습니다만,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모두 폴더폰을 들고 다녔습니다. 15년 전에는 핸드폰이 모두 흑백이었죠.
20년 전이요? 삐삐라고 들어 보셨지요? ㅋ
www.whenwasitinvented.org
EPS에 들어가는 모터를 한번 보시지요.
BLDC 모터가 개발되기 전에는 모든 DC모터에는 브러쉬가 달려 있었습니다. 전원공급을 위해 회전축을 브러쉬가 ‘쥐고’ 있어야 하므로 마찰열이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www.knowyourparts.com
미니카를 오래 돌려보면 모터가 엄청 뜨거워지면서 타는 냄새가 납니다. 회전이 느려지게 되지요. 같은 현상이 EPS에도 발생합니다.
핸들을 오래 돌리다 보면 열이 나게 되고, 회전이 느려지면서 반응도 느려지게 됩니다.
이러다 만약 모터가 고장나서 핸들이 잠긴다면.....
다음은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예전 모터들은 구조적으로, 사이즈도, 출력도 EPS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추가로, 모터를 컨트롤하는 기술개발도 어려웠습니다.
이건 또 뭔가요. 그냥 모터를 돌려주기만 하면 되는게 아닌가요?
운전자가 핸들을 올릴 때, 세게 돌릴 수도, 약하게 돌릴 수 도 있습니다.
입력 값을 전달 받아 모터 역시 출력을 세게, 혹은 약하게 조절해 주어야 하는데요. 이때 노면의 상태에 따라 다른 값을 전달 해 주어야 올바른 회전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www.tuningtalk.com
빙판길과 끈적끈적한 고온의 아스팔트에서 같은 조향력이 전달된다면 운전에 문제가 되겠지요.
그래서 토크 피드백은 운전 상태에 따라, 노면 상태에 따라, 차량 상태에 따라 각각 다른 최적의 값이 나와야 합니다.
이것도 말이 어려운데 그냥 상황에 따라 자동 컨트롤이 대단히 어렵다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www.carmudi.com.ph
초반에 등장한 EPS는 EHPS에 비해 덜 성숙했고, 외면받아왔습니다. 시스템이 단순한 장점이 있다 하더라도 핸들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은 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1988년 첫 양산이 되었음에도 20년이 자나서야 대중화 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는 기술이 개발됨에 따라 이런 약점들이 보완되었고, 지금은 EPS가 대세로 자리잡은 상황입니다.
신뢰성도 높아졌고, 이질감도 없어졌고, 향후 등장할 무인 자동차에는 EPS가 필수이기 때문에 아마 조만간 유압식 파워 스티어링 휠은 만나보기가 어려워 질 겁니다.
www.teakolik.com
여담으로 이런 추세는 항공기에서 이미 보여왔는데,
플라이 바이 와이어라는 FBW 전자 조종 기술이 대표적입니다. 신형 항공기는 FBW 덕분에 자동으로 이륙, 순항, 착륙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동차도 곧 이런 시대가 오겠지요? 운전자는 손만 거들 뿐. 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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