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본사가 해외 독립법인을 장악하는 방법
자동차 회사 글로벌 다국적 기업입니다. 한국에 본사를 두고 미국에서 차량을 생산하기도 하고, 거꾸로 유럽에 본사를 두고 한국에서 차량을 생산하기도 합니다. 삼성전자의 핸드폰이 베트남에서 생산되어 유럽으로 팔리는 것과 비슷 하지요.
본사의 위치와 상관 없이, 세계 다양한 지역에서 개발되어, 다양한 지역에서 생산되고, 다양한 지역으로 팔려 나갑니다. 국적이 어디인가라는 의문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다국적화 되어 있습니다.
한국 안에서 보면 주로 쉐보레와 르노삼성이 이런 범주에 들어갑니다. 북미에서 개발된 말리부가 한국에서 생산 중입니다. 마찬가지로 유럽에서 개발된 SM5, SM7이 한국에서 생산 중이지요.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과연 이들 차량이 국산차가 맞는지 갑론을박이 벌어지곤 했습니다. 뭐 근래에는 생산지를 기준으로 국산차를 분류하면서 더 이상 논쟁거리도 아니지만요. (이미 임팔라나, SM6같은 케이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시선을 차량이 아닌 기업으로 돌려 보겠습니다. 현대자동차만 보더라도 본사는 한국에 있지만, 세계 각 지역에 별도 법인이 설립되어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법인의 정식 명칭은 ‘Hyundai Motor America’로 본사인 Hyundai Motor Company와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북미 지사라면 당연히 한국 기업이겠지만, HMA는 과연 한국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차량의 국적분류와 마찬가지로, HMA가 한국기업이냐 미국기업이냐 굳이 분류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기준에 따라 한국국적도 정답이고 미국국적도 정답입니다. 한국에 돈을 벌어다 주니 한국기업이면서, 미국에 설립된 독립법인이니 미국기업이기도 합니다.
뭐에요 그럼 글을 뭐 하러 쓴 거에요. 답이 없잖아요. 영혼 없는 결론 같으니라고….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주제는 한번 깊이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본사가 해외 계열사를 어떻게 지배하는 지가 더 중요한 포인트거든요.
보통 자동차 회사의 지역법인들을 보면 거의 모두 본사가 100% 출자해서 설립합니다. 이 말인 즉슨 법인 지분을 본사가 모두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고 보니 중국은 50-50 이네요) 대표이사를 비롯한 이사진 선임을 모두 본사가 직접 꾸릴 수 있습니다. 배당률에 따라 이윤의 일정 부분을 본사로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혹시나 신규설립이 아닌 M&A를 통한 설립이더라 하더라도 이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분률만 다르고 여기에 따른 배당수익이 차이가 나는 정도겠군요. 표면적으로만 인사권만 장악한 별개의 기업처럼 보입니다.
현대로 치면, 정몽구 회장은 법인장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습니다. 하지만 HMA의 수익을 모조리 한국으로 가져올 수 없습니다. 별도 기업이니까요.
과연 정말 별개의 기업일까요? 회사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인사권과 함께 재무권도 같이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해외법인의 돈을 마음대로 쥐락펴락 해야 진짜로 장악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외견상 별도의 재무체계를 가지는 것 같으니, 장악하지 못하고 봐야 겠군요.
그럴리 가요. 만약 그렇다면 이 글을 쓰지도 않았을 겁니다. 본사는 해외법인의 자금을 다양한 방법으로 장악합니다. 제일 쉽게 생각할 수 있는게 로열티입니다. 말씀드렸듯. 어짜피 두 조직은 별도의 회사입니다. 따라서 본사 이외의 회사에서 본사의 차를 생산하려면, 응당 저작권에 해당하는 비용을 내야겠지요.
니네가 개발한 차량을 지역에서 생산할 테니 허가해 달라. 그래서 해외공장에서 생산되는 차량에는 ‘로열티’라 불리는 본사송금액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비자가 차를 살 때마다, 일정금액이 본사로 넘어갑니다. 배당수익 이외의 숨어있는 다른 수익이 있는 셈입니다.
시스템 사용료도 생각해 볼 수 있겠지요. 자동차 회사에는 부품 조달부터, 조립후 판매까지, 유기적으로 연결된 전산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전 세계가 공유해서 한 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 져 있습니다. 이 시스템을 만들고, 운용하고, 유지보수하는 주체가 바로 본사입니다.
따라서 ‘IT 사용료’라는 명목의 비용이 해외 법인에서 본사로 송금됩니다. 우린 싫어 다른 시스템을 쓸래, 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무조건 써야 합니다. 안 쓰면요? 생산 자체가 불가능 합니다. 야! 본사의 또 다른 숨은 수익을 하나 찾았습니다.
이게 끝이 아닙니다. 또 있습니다. 바로 금융비용 입니다. 해외법인이 신규 공장을 짓는 등의 투자가 필요하면 돈을 빌려와야 합니다. 둘 중 하나지요. 은행 아니면 본사에서 빌려와야 합니다. 빌린다고요? 계속 말씀 드리지만, 본사와 해외법인은 다른 회사입니다. 별도 법인간 금융거래는 은행 융자와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상식적으로라면 보다 낮은 금리를 선택해서 돈을 빌려야 겠지요? 하지만 굳이 은행 배를 불릴 필요가 있을까요? 네, 이 비용은 본사에서 넘어옵니다. 그리고 매년 꼬박꼬박 이자비용이 본사로 송금되고요. 이자율을 어떻게 책정하느냐에 따라 해외법인의 수익률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극단적인 예지만, 수익을 손실로 바꿀 수도 있겠지요.
놀랍지 않으신가요? 제가 언급한 방법만 벌써 세 가지입니다. 회사의 가장 하부 조직에 있는, 제 눈에 보이는 방법만 세 가지 입니다. 해외 법인의 ‘돈’을 장악하는 방법이 이보다 많으면 많았지 적진 않겠지요.
이미 아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새로우신 분들도 있을 거고요. 이 방식이 비단 해외법인에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으실 겁니다. 국내 계열사간에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이 글의 목적은 이런 수단이 좋다, 나쁘다라고 평가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제가 평가 내릴 수도 없고요. 단지 기업 운영방식에 여러 가지 다양한 수단들이 사용되고 있고, 자동차 회사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공유하기 위함입니다. 숨어있는 고리를 볼 수 있다면, 작게는 기업현황을 보는 눈이, 크게는 경기 흐름을 읽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요? 기업경영이라는 건 알면 알수록 흥미롭고 신기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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