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싱 드론용 고글의 주문과 좌절, 그리고 결재취소
요새 뭐에 홀린 것 같습니다. 괜찮은 직구 물품들의 세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비킹에서 레이싱 드론용 고글 세트, (더 정확하게는 FPV DIY 세트겠네요)가 30달러, 우리돈으로 3만 6천원 이나 세일된 가격으로 올라 와 있었습니다. 99 달러에서 69달러로 떨어졌으니 할인폭이 30%에 다다릅니다.
요새 레이싱 드론이 흥한건 다 아실 겁니다. 매니악해 보이는 이쪽 분야가 급속히 늘고 있는건 바로 영상기기의 발전 탓이 큰데요. 드론을 파일럿 시점에서 조종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장비가 바로 FPV (Firtst Person View) 입니다. 드론에 카메라를 달고, 영상정보가 조종자의 고글로 전해져서 실시간으로 드론 조종이 가능하지요.
(고글이 아니더라도, 송신기의 디스플레이, 혹은 별도 장비된 디스플레이 만으로도 FPV 구성이 가능합니다.)
제가 본 FPV 세트 구성은, DIY 고글, 영상 송신기, 영상 수신기, 그리고 카메라로 되어 있습니다. 각각 다른 브랜드로 따로 사면, 고글만 빼고도 100달러에 약간 못 미치는 구성입니다.
게다가 고글. 이거 대박 이네요. 업계에서 유명한 팻샤크(Fatshark)나 스카이존 (Skyzone)의 고글은 고글만 개당 200불이 훌쩍 넘습니다. 아무리 저렴하게 잘 꾸리더라 하더라도 정상적인 구성으로는 최소 300달러, 달러당 1,000원만 잡아도 얼추 30만원 이상 투자해야 합니다. 그런데 70불, 불과 8만원이라니요.
초 저가 세트 상품인데, 퀄리티야 어찌됐던 질길 수 있으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흥분과 기대에 눈빛이 미세히 떨립니다.
지름신께서 Player1님의 제어권을 접수하셨습니다....
Player1님의 메모리에 저장된 용돈 현황은 리셋 되었습니다....
Player1님 마무스는 최종 결재로 이동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문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런데 젠장. 주문이 완료되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듭니다. 문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영상 송수신기의 스팩을 좀 보세요. 5.8GHz에 200mW 입니다. 핫핫핫핫핫핫. 이거 작동시키는 순간 저는 범법자가 되고 맙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드론에 달리는 송수신장치는 전파법의 기준을 따라야 합니다.
전파법 시행령 제25조 제4호중 ‘신고하지 아니하고 개설할 수 있는 무선국용 무선기기’ 행정규칙에 보면 거의 모든 장비의 출력은 10mW 이하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저 장비는 200mW의 출력을 가지고 있지요. 물건 받고 박스까고 전원 연결하는 순간 저는 현행법 위반으로 벌금 200만원을 내야하는 사범이 되는 겁니다.
물론 200mW도 사용할 순 있습니다. 전파법 시행령 제24조를 보면 이동체에 설치하는 경우는 신고가 아니라 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신고는 쓰겠습니다. 등록해주세요 입니다만, 허가는 쓰겠으니 허락해주세요. 입니다. 허락을 받으려면 각종 서류를 준비하고 제출해야 합니다. 시행령 제 31조에 ‘무선설비의 시설개요서와 공사설계서’의 내라고 하는데.... 또 다시 핫핫핫핫핫핫. 그냥 GG 쳐야지요. 이건 그냥 못 날리는 겁니다. 공사 설계서라니요. 취미로 조그만 드론 하나 날리는 건데요.
100번 양보해서 서류가 준비되었다고 해 보지요. 하지만 다음 타자들이 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등기사항 증명서, 자동차등록원부, 목적, 장소, 호출부호, 공중선 형식, 구성 및 이득에 대한 세부 자료. 등등….. 모두 준비해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제출해야 합니다. 영광이군요. 제 주제에 장관님 허락을 받아야 한다니.ㅋ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지름신 강림으로 아무 생각 없이 지르고 만 제 탓이지요. 이 세트를 활용할 해결방안은 단 하나 밖에 없습니다. 5.8GHz 10mw용 별도 송신기를 사서 달아주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제품이 없진 않습니다. 찾아보면 가장 낮은 스팩의 제품들, 현재 시장에 있는 가장 저렴한 제품이 10mw의 출력을 가집니다. 그러면 약 30m 내외에서의 FPV 세상을 만끽할 수 있겠지요.
벗뜨. 안타깝게도 제품 군이 거의 없습니다. 10mW는 핸드폰으로 치면 3G 폴더 정도 됩니다. 게다가 초보는 수신기 브랜드와 동일한 송신기를 골라야 합니다. 단종된 3G 폴더폰의 배터리를 구하는 느낌과 비슷할까요. 굳이 하자면 세트를 처음부터 다시 꾸리는 편이 낫습니다. 결국 저는 눈물을 머금고 주문 취소를 눌려야 했습니다.
뉴스들을 보면 드론 관련 사업이 신수종 사업으로 채택되는 분위기입니다. 이미 군수시장에서도 꽤나 활발한 개발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일반인을 위한 관련 박람회도 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 법령을 조금만 깊게 들여다 본다면 그렇지도 않아 보입니다. 현행법 체계로는 드론산업 육성 자체가 어려워 보입니다. 일반인인 제가 찾아봐도 이렇게 걸리는 점들이 많은데요.
만약 정부에서 진정으로 드론산업을 키우고자 한다면, 규제 철폐를 위한 법령 정비가 먼저이지 않을까요? (글을 쓰면서 왜 사업하시는 분들이 정부 규제를 성토하는지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고하지 아니하고 개설할 수 있는 무선국용 무선기기 행정규칙 - 국가법령정보센터
제2조(정의) 이 고시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3. "무선조정용 무선기기"라 함은 비행기, 자동차, 보트 등의 실물과 유사한 형태 및 기능을 갖춘 모형체를 원격 조정하는 무선기기를 말한다.
제4조(특정소출력 무선기기) 특정소출력 무선기기는 다음의 각 호와 같다.
1. 무선조정용 무선기기
8. 무선데이터통신시스템용 무선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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